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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안의 중국

다른 문화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찾은 키워드는 통제이다사회주의 계획경제시절 부터 현대 중국 사회까지 끊임없는 통제 제한 시달려온 중국사회는 그래도  신기하게 활력이 넘친다어린시절 모래상자안에 넣어둔 개미들이 어느새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해둔 것을 볼때처럼 곳곳의 주어진  안에서 발전하는 중국사회를 발견할 때면  사회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감탄이 나올때가 많다중국을 통제하고 있는다양한 크기의 테두리들을 이해하게 된다면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에도상당히 유용하다그럼 이제부터 중국이란 나라 곳곳에 쳐져있는 테두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보고자 한다.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말할때면 작은나라단일민족의 나라 라고 언급할 때가 있다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빠르게 이룰  있었고 빈부격차도 그렇게 심하지 않고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이 쉽고 다당제를 바탕으로한 민주정치가 가능하단 식의 논의 들이다이런 말을 들을때 마다 한국을 얕잡아 보며 하는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같다한민족으로 구성된 한국은 누군가 테두리를 만들어 주지 않더라도 한반도가  나라가 아님을 걱정할 필요는없다민족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웃이 어떤 민족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제주도 사투리가 아무리심하다 한들 전국에 서울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뿐더러 한반도  어느곳에서도 해는 같은 시간에 진다.이런 객관적 단결력 덕분에 한국은 나랏일이  일이   밖에 없다나라 안의 사람들이 많은 부분에서같은 이해관계를 갖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나라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 만들어준 테두리의 통제 없이는 나라의 구성 자체도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56개나 되는 민족이 있는데 55 소수민족을 제외한 한족이 95%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수민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그냥 한족이라고 칭하는 것임을 안다면 사실상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인지 알수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중국사투리는 사실상 글로 표현했을때만같지 말로 들어서는 같은 나라 말인지 분간할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나라의 서쪽 변경에서는 소수민족의 독립 주장하는 단체들이 정부에 반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고 지역별 경제발전 수준의 차이가 일으키는 문제들은 중국 최고위급 간부 회의에서 10 이상 단골 안건으로 토론되오고 있다.



 예전에 외국 기자가  차이나 로드 라는 책에서 작가가 중국을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제국주의 국가라고묘사한 부분이 있다 중국이 물질적 힘을 통해 원래는 중국에 속해서는 안되는 민족과 지역들 까지 포함하고 주장하는 것이다민족 자결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이 틀리지만은 아닐수도 있겠지만학생의 신분으로써 정치적 판단은 배제하도록 하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중국이 하나로 묶이기 위해서는 밖으로 부터 안으로의 인위적   통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조금 불편하지만 중국 전역에서는베이징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사용하고 있고소수민족 자치구에도 반드시 소수민족 학교와 함께 한족 학교가 같이 새워진다한국의 현대사에서 호남과 영남의 불균형발전도 그렇게 많은 지역적 갈등을 초래 했는데하물며 불균형발전 정도가 아니라 차별발전 수준인 선부론에도 중국이 안정을 유지할  있었던 것은 정책과  집행이 훌륭해서만은 아닐것이다.
중국이 유독 한나라로 묶이는 데에 민감한건 사실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왕조가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그리고 통치계급도 비단 한족 뿐만이 아니라 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굉장히 다양했다몽고 초원에서 시작하여 중국 대륙 그리고  나아가서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몽고족들이  세력을 떨친 원나라 시절에는 중국 안에서도 통치계급은 칭기스칸의 후예들이였고 따라서 몽고족의 관습과 제도를 따랐다 후로 명나라가 들어서 다시 한족이 통치하는 왕조가 들어섰지만 훗날 만주벌판의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 금나라에게 정복당해 청나라 라는 만주족이 다스리는 새로운 왕조가 중국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비록오랜새월 한족과 만주족의 혼거가 지속되면서  민족의 문화가 융화되어 청나라의 많은 부분이 한족화 되어버리긴 했지만 서양 열강들에 의해 청나라가 무너지기  까지도 중국은 만주족 통치계급이 다스리는 나라였다이런 민족적 복잡성과 정의하기 힘든 세력범위 때문에 중국의 역사는  나라의 역사라기보다는 대륙의 역사에  가깝다이는 역사를  나라의 범주에서 이해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수긍이 안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세계에는 여러나라가 존재하고 나라가 존재하는 형태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역사관이  틀리다고 볼수만은 없다그렇기 때문에 원나라는 몽고족이 세웠고 한때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통치했지만 그렇다고 원나라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지는 않은 경계가 모호한 역사관이 형성되는 것이다청나라 역사 역시 마찬가지이다역사적으로 청나라는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건설한 나라이지만 현세대에 와서는 청나라 역사가 누구에게나 당연한 중국의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경대학교에 개설된 한국역사수업 시간에 중국 교수님과 발해의 역사에 대해 의견을 나눈적이 있다삼국시대 후의 한반도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의 역사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고구려 이민의 후예가 새운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길래 중국역시 정치적 목적에 맞춰 역사를  정의하는 것은 아닌가 하여 교수님께 질문을 드렸다. “고구려는 분명히 한반도의 역사로 취급하면서도 고구려이민자들이 통치계급이 되어 건립된 다민족 국가 발해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로 설명해 주시지 않는것입니까?” 교수님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발해는 훗날 거란족이 새운 요나라에 무너졌는데그렇다면 요나라의 역사도 한반도 역사로 간주해야 하는가?” 역시 같은 논리로 “동북지방에서 시작된 금나라가 훗날중국 전역을 지배했는데 그럼 청나라 역시 한국 민족의 역사와 관련지어 보아야 하는 것인가?” 물론 교수님이 필자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학술적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대답해주신 것은 아니다하지만 교수님의 요지는 확실했다역사라는 것은 어쩔수 없이 현대 국가의 범주안에서 쓰여질  밖에 없다는 것이다과거의역사도 중요하지만과거는 다시 현재의 국가 영토와 민족구성과 연관되어 설명될  밖에 없다는 것이 교수님의 논점이였다그리고 이것이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중국의 역사관이다.
 중국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 진나라를 통일 다민족 국가 형성의 시작으로 보았을때 중국은 2000년이넘는 시간동안  민족이 중앙집권제도와 봉건제도를 통해 다른 나머지 민족을 통치하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커다란  안에서  민족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서로 교류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통해 중국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다 중국 정부의 서북쪽 위구루족 자치구역과 서남쪽 티벳지역에 대한통치 역시 이러한 역사관을  명분으로 삼고있다이런 역사관의 옳고 그름을 사학자들에게 맞겨두기로하고 필자는 보통사람들의 생각들 그리고 이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다.
중국에서 유저수가 가장 많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  하나인 런런왕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다민족 국가에대한 필자의 궁금증을 요약한 포스트를 등록한 적이 있다질문의 내용은 중국의 모든 국민들과중국내의모든 민족들을 규합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였다물론 심각한 어조로 게시한 글도 아니였고 질문을 받는 대상자들 역시 필자와 같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재미있는 대답을 기대했다예를들어 한국인에 같은 질문을 했을때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축구 또는 김치 같은 평범한 대답을 했을 거라고 예상된다하지만 과반수 이상의 친구들이 필자에게 해준 대답은 뜻밖에도 톈차오였다톈차오는 중국 정부를 비꼬아서 말하는 말이다 중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중국정부라고 대답한 것이다이는 매우 단편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도 중국을 하나로 유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도 그것을 알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였다.
2009년에 일어난 위그루족 자치구 폭동에 대해서 많은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국내외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처럼 이는 매우 폭력적이였던 사태로 중국인들을 이를 7.5 사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중국이 겪고있는 민족적 갈등을 드러낸 최근에 일어난 사건중 하나이다이에 대해서 위그르족 자치구에 사는 필자의친구가 재미있는 일화를 이야기 해준 적이 있다당시 폭력사태로 번져버린 위그루족 시위는 수십일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의 확산을 막기위해서 중국정부가 시위 주도자들과 민족 지도자들을 체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동이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계속되었다그러자 정부는 급기여는 이를 막기위해 우루무치라는 위그르족 자치구 지역에서 가장  도시의 인터넷 접속을 무려 2달이나 중지하였다고 한다이때문에  지역 피씨방은 어쩔수 없이 2달동안이나 영업을 못해 손해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필자의 친구는 우스겟소리로 해준 이야기 이지만 이를통해 중국정부가 국가유지를 위해 얼마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지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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